에르제의 집
WHO IS Hergé?
첫 번째로 가볼 곳은 <에르제의 집>입니다.
유럽만화의 아버지이자 ⌜땡땡의 모험⌟을 그린
에르제의 삶은 어땠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함께 톺아보다보면
예술과 땡땡을 향한 에르제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첫 번째로 가볼 곳은 <에르제의 집>입니다.
유럽만화의 아버지이자 ⌜땡땡의 모험⌟을 그린
에르제의 삶은 어땠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함께 톺아보다보면
예술과 땡땡을 향한 에르제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첫 번째로 가볼 곳은 <에르제의 집>입니다.
유럽만화의 아버지이자 ⌜땡땡의 모험⌟을 그린
에르제의 삶은 어땠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함께 톺아보다보면
예술과 땡땡을 향한 에르제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조르주 레미, 필명 에르제
1907년 5월 22일, 벨기에 에퇴르베크에서 조르주 레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1924년부터 조르주 레미의 이니셜을 거꾸로 뒤집은 R.G. '에르제'를 필명으로 정하죠.
1907년 5월 22일, 벨기에 에퇴르베크에서 조르주 레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1924년부터 조르주 레미의 이니셜을 거꾸로 뒤집은 R.G. '에르제'를 필명으로 정하죠.
1918년, 조르주 레미(오른쪽)와 동생 폴(왼쪽)
© Studios Hergé collection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배우다
에르제는 어릴 적 영화관에 가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두 가지를 매우 사랑했어요.
이후 청소년이 된 그는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중요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바로 자연에 대한 사랑, 지략, 충성심과 우정, 약자에 대한 도움이었죠. ⌜땡땡의 모험⌟ 속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에르제는 어릴 적 영화관에 가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 두 가지를 매우 사랑했어요.
이후 청소년이 된 그는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중요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바로 자연에 대한 사랑, 지략, 충성심과 우정, 약자에 대한 도움이었죠. ⌜땡땡의 모험⌟ 속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1922년, 15살의 에르제 (오른쪽)
© Saint-Boniface-Parnasse Foundation
1929년 1월 10일,
<땡땡의 모험>의 시작
1925년, 18살의 에르제는 르 벵티엠 시에클 신문사 구독 부서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업무 외에도 보이스카우트 매거진에 첫 연재 만화 '풍뎅이 순찰대장 토토르'를 연재했어요.
1927년, 군복무를 마친 에르제는 신문사의 국장 노르베르 발레 신부를 만납니다. 그는 에르제의 그림 실력을 알아보고 신문의 어린이 증보판인 르 프티 벵티엠에 삽화를 넣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1929년 1월 10일, ⌜소비에트에 간 땡땡⌟의 첫 두 페이지가 르 프티 뱅티엠에 실리며 '땡땡의 모험'은 시작되죠.
1925년, 18살의 에르제는 르 벵티엠 시에클 신문사 구독 부서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이 업무 외에도 보이스카우트 매거진에 첫 연재 만화 '풍뎅이 순찰대장 토토르'를 연재했어요.
1927년, 군복무를 마친 에르제는 신문사의 국장 노르베르 발레 신부를 만납니다. 그는 에르제의 그림 실력을 알아보고 신문의 어린이 증보판인 르 프티 벵티엠에 삽화를 넣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1929년 1월 10일, ⌜소비에트에 간 땡땡⌟의 첫 두 페이지가 르 프티 뱅티엠에 실리며 '땡땡의 모험'은 시작되죠.
1926년, 에르제(왼쪽)
© Michel Lichtaert collection
제르멘과의 결혼,
창춘첸과의 만남
1932년 7월, 그는 발레 신부의 비서 '제르멘 키메즈'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제르멘은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에르제는 <소비에트에 간 땡땡>부터 <푸른 연꽃>까지 모험 시리즈를 쭉 이어나갔습니다.
1931년~1934년, 에르제는 브뤼셀에서 공부하던 젊은 중국인 예술가 창춘첸을 만납니다. 그는 <푸른 연꽃> 에피소드를 완성하는 에르제에게 중국의 역사, 문화 등을 알려주었고, 추후 에르제의 작품과 인생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2년 7월, 그는 발레 신부의 비서 '제르멘 키메즈'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제르멘은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에르제는 <소비에트에 간 땡땡>부터 <푸른 연꽃>까지 모험 시리즈를 쭉 이어나갔습니다.
1931년~1934년, 에르제는 브뤼셀에서 공부하던 젊은 중국인 예술가 창춘첸을 만납니다. 그는 <푸른 연꽃> 에피소드를 완성하는 에르제에게 중국의 역사, 문화 등을 알려주었고, 추후 에르제의 작품과 인생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4년, 에르제, 제르멘, 창춘젠
© Jacques Langevin / SYGMA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다
1930년대 <르 프티 벵티엠>에서의 작업으로 인해, 에르제는 본인이 극우주의자들의 모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모두 친히틀러주의자였으며, 발레신부 또한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죠.
브뤼셀이 해방된 1944년 9월부터 유럽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1945년 5월까지, 에르제는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당시 신문은 독일의 통제 하에 있었기에 전쟁선전과 반유대주의의 대변자 역할을 하였고, 에르제가 해당 신문에서 만화를 그린 것이 문제가 되었죠. 이로 인해 그의 평판은 추락했고 나중에서야 이러한 오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1930년대 <르 프티 벵티엠>에서의 작업으로 인해, 에르제는 본인이 극우주의자들의 모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모두 친히틀러주의자였으며, 발레신부 또한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죠.
브뤼셀이 해방된 1944년 9월부터 유럽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 1945년 5월까지, 에르제는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당시 신문은 독일의 통제 하에 있었기에 전쟁선전과 반유대주의의 대변자 역할을 하였고, 에르제가 해당 신문에서 만화를 그린 것이 문제가 되었죠. 이로 인해 그의 평판은 추락했고 나중에서야 이러한 오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꾸준한 작업과 함께
일상을 챙긴 에르제
1954년~1962년, ⌜해바라기 사건⌟부터 ⌜카스타피오레의 보석⌟까지 여러 걸작들이 탄생합니다. 에르제는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철학자 미셸 세르를 비롯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또한 현대 미술에 빠져 추상화, 팝아트, 미니멀리즘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를 수집했죠.
1954년~1962년, ⌜해바라기 사건⌟부터 ⌜카스타피오레의 보석⌟까지 여러 걸작들이 탄생합니다. 에르제는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철학자 미셸 세르를 비롯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또한 현대 미술에 빠져 추상화, 팝아트, 미니멀리즘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를 수집했죠.
1958년, 에르제 (오른쪽에서 네번째)
© Nemerlin
1983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다
1979년, 그의 창작물을 기리고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브뤼셀, 파리, 몬트리올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회 '땡땡 상상 박물관'의 개관일에 피로한 모습을 보였던 에르제는 다음해 백혈병 진단을 받고 1983년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단지 분자들이 분산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요.
1979년, 그의 창작물을 기리고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브뤼셀, 파리, 몬트리올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회 '땡땡 상상 박물관'의 개관일에 피로한 모습을 보였던 에르제는 다음해 백혈병 진단을 받고 1983년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단지 분자들이 분산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요.
1982년, 에르제